통일신라와 발해 이야기
삼국의 멸망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
삼국시대가 끝난 후, 한반도와 그 주변에는 새로운 나라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통일신라와 발해입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으면서도 같은 시기에 존재하였고, 각각의 문화를 꽃피우며 발전하였습니다.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통일신라는 한반도의 남쪽을 중심으로, 발해는 북쪽과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켰습니다.
통일신라의 시작과 발전
통일신라는 신라가 삼국 중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한반도의 대부분을 통일하면서 시작된 나라입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힘을 합쳐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당과 전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하여 스스로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라가 바로 통일신라입니다.
통일신라는 삼국이 존재하던 시대와는 달리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신문왕은 중앙의 권력을 강화하고, 지방을 정리하여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9주 5소경이라는 행정 구역 제도를 도입하여 전국을 잘 나누고 다스렸으며, 지방의 균형 발전을 꾀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불교가 나라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은 불교를 깊이 믿었고, 많은 절과 탑,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도 그 시대의 불교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문화와 예술도 매우 발전하였습니다. 신라의 금관과 장신구는 당시 기술과 미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주에는 수많은 무덤과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이는 당시의 화려한 문화를 증명해 주는 자료입니다.
교육과 정신적인 수양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화랑도는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훈련하고 공부하며 바른 인성을 기르는 제도였습니다. 화랑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히 싸우며 충성과 효를 실천하였습니다.
통일신라의 쇠퇴와 멸망
통일신라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권력은 약해지고, 귀족들은 각자의 권력을 이용하여 나라를 좌우하였습니다. 농민들은 무거운 세금과 노동에 시달리며 점점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후백제와 후고구려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였습니다. 후백제는 견훤이 세웠고, 후고구려는 궁예가 세웠습니다. 이렇게 다시 나라가 셋으로 나뉘자 우리는 이 시기를 후삼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통일신라는 더 이상 이들을 막을 힘이 없었고, 결국 935년에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며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발해의 등장과 성장
발해는 698년에 대조영이 세운 나라입니다.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군 출신이었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 근처에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는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자라고 여기고,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발해는 처음에는 작은 나라였지만, 점점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 영토는 지금의 북한 북부, 중국 동북지방, 그리고 러시아 일부 지역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넓이는 통일신라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발해는 나라를 다스리는 체계를 잘 갖추었습니다. 5경 15부 62주라는 행정 구역을 정해 전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수도는 처음에는 동모산이었으나 나중에는 상경 용천부로 옮겼고, 그곳에는 궁궐과 절, 시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습니다. 상경 용천부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의 구조를 본떠 만들었을 만큼 발해의 문화는 고급스러웠습니다.
발해의 문화와 외교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 문화와 당나라의 문화를 잘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불교도 활발히 믿었으며, 절과 탑, 불상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발해의 예술은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며, 벽화와 도자기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발해는 주변 나라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당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맺고 사신을 보내 교류하였고, 일본과도 교류하며 선진 문화를 전파하였습니다. 신라와는 갈등이 있었지만, 때로는 사절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발해를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고 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발해가 문화와 경제, 정치 모두에서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발해의 사람들과 생활
발해의 백성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쌀, 보리, 기장 같은 곡물을 재배하였고, 말과 소도 키웠습니다. 산과 강에서 사냥과 고기잡이도 하며 먹을거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살았고, 마을에는 시장도 생겨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았습니다.
옷은 계절에 따라 다르게 입었으며,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귀족들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장신구를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발해의 쇠퇴와 멸망
발해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힘이 약해졌습니다. 왕실 내부의 싸움과 외부 민족의 압력으로 인해 나라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926년에 북쪽의 강한 민족인 거란족이 발해를 공격하였고, 발해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후, 많은 백성들이 고려로 넘어가 정착하였고, 고려는 발해의 유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고려는 자신들이 고구려와 발해의 전통을 이은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는 삼국시대가 끝난 뒤 등장한 두 강력한 나라입니다.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 대부분을 다스리며 불교와 예술,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더 넓은 땅에서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비록 두 나라는 시간이 흐르며 멸망하였지만, 이들이 남긴 문화와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역사에서 조화, 발전, 끈기, 자긍심 같은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두 나라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소중한 역사입니다.